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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막걸리를 한동안 입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대학교 MT에서 막걸리를 과음하고 일주일 내내 술이 깨지 않아 고생한 뒤로, 막걸리는 제 머릿속에서 '위험한 술'로 각인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통풍 진단을 받은 지인이 유일하게 즐겨 마시는 술이 막걸리라는 걸 알고 나서,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꽤 복잡한 발효 음료였습니다.

막걸리 속 유산균, 숫자로 보면 놀랍습니다
막걸리를 발효주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유산균 수치를 직접 확인하고는 저도 꽤 놀랐습니다. 막걸리 한 병(750mL) 기준으로 유산균이 700억에서 800억 마리 수준입니다. 시중에서 파는 유산균 영양제가 보통 100억 마리를 함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치상으로는 막걸리 한 병이 유산균 영양제 7~8개 분량인 셈입니다.
여기서 유산균이란 장내 환경을 개선하는 미생물로, 장점막을 강화하고 유해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장내 유산균 비율이 높을수록 면역력 유지에 유리하다는 점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사실입니다. 막걸리를 만들 때 사용하는 누룩이 쌀의 전분질을 분해하면서 젖산발효가 일어나는데, 이 과정에서 유산균이 자연적으로 생성됩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유산균은 위산에 취약해서 장까지 살아서 도달하는 비율이 낮습니다. 영양제의 경우 코팅 처리가 되어 있어 장 도달률이 높은 반면, 막걸리 속 유산균은 그런 보호막 없이 소화기관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렇다 해도 발효 식품이 장 건강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된장, 청국장을 즐겨 먹는 장수 마을 어르신들의 식습관을 보면, 발효 음식과 장수의 연관성은 단순한 통설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통풍 예방, 막걸리가 맥주보다 유리한 이유
지인이 통풍 진단 이후에도 막걸리만큼은 끊지 않는다고 했을 때, 솔직히 처음에는 그냥 좋아서 드시는 거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건 근거가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통풍은 퓨린이라는 물질이 체내에서 요산으로 전환되고 이 요산이 관절에 축적되면서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퓨린이란 핵산의 구성 성분으로, 맥주나 내장류, 튀김류에 특히 많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맥주를 많이 마시는 분들이 통풍 위험군에 자주 포함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막걸리는 이 요산 생성 과정을 억제하는 물질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잔틴산화효소(XO)의 활성을 저해하는 방식입니다. 잔틴산화효소란 퓨린이 요산으로 전환될 때 반응을 촉진하는 효소인데, 막걸리 성분이 이 효소의 활성을 최대 65%까지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조건에서 맥주의 억제율이 최대 9% 수준임을 감안하면, 막걸리의 억제 효과가 맥주 대비 약 7배에 달합니다. 이 수치는 살균 막걸리와 생막걸리 모두에서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물론 막걸리도 알코올이 포함된 음료이기 때문에, 통풍 환자가 많이 마셔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술자리를 완전히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맥주보다는 막걸리 쪽이 통풍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합니다.
유산균만이 아닙니다, 아미노산·식이섬유 수치도 주목할 만합니다
막걸리를 단순히 '유산균 음료'로만 인식하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 성분 구성을 보면 그 이상입니다. 막걸리의 단백질 함량은 약 1.7% 수준이며, 발효 과정에서 이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됩니다. 라이신, 트립토판, 메싸이오닌, 페닐알라닌을 포함한 10여 종의 필수 아미노산이 균형 있게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메싸이오닌이란 인지질 합성을 촉진해 간의 지방 대사를 돕는 필수 아미노산으로, 지방간이나 간경화 예방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술을 마시면서 간 보호 성분도 함께 섭취하게 되는 셈이니 다소 아이러니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식이섬유 함량도 주목할 만합니다. 막걸리 한 병(750mL)에 평균 15g의 식이섬유가 들어 있는데, 이는 사과 4~5개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식이섬유는 장 운동을 촉진하고 LDL-콜레스테롤(저밀도 지단백질 콜레스테롤)의 장내 흡수를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LDL-콜레스테롤이란 혈관 벽에 쌓여 동맥경화를 유발할 수 있는 '나쁜 콜레스테롤'로 불리는 지단백질입니다. 막걸리 성분이 LDL-콜레스테롤과 중성지질의 혈중 농도를 낮추고 혈전 생성을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한국식품연구원).
이 모든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곳이 바로 병 바닥에 가라앉는 술지게미입니다. 제가 직접 마셔보니 윗물만 따라 마시는 것과 잘 섞어서 마시는 것은 맛에서도 차이가 꽤 납니다. 효능 면에서도, 맛 면에서도, 막걸리는 반드시 흔들어서 마셔야 합니다.
숙취 관리, 어떤 막걸리를 어떻게 마실 것인가
막걸리 숙취에 대한 저의 트라우마는 결국 '어떤 막걸리를 마셨느냐'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탄산이 자글자글 올라오는 생막걸리는 발효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미숙주 상태로 출고됩니다. 병 안에서도 발효가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탄산이 생기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아세트알데히드가 다량 검출됩니다.
아세트알데히드란 알코올이 체내에서 대사될 때 생성되는 중간 물질로, 두통·구토·안면홍조 등 숙취 증상의 주요 원인 물질입니다. 이 물질은 막걸리가 가장 활발하게 발효될 때 대량 검출되고, 발효를 마치고 숙성 단계에 접어들면서 감소합니다. 즉, 발효를 완전히 끝내고 숙성 기간을 충분히 거친 막걸리일수록 아세트알데히드 함량이 낮고 숙취도 적습니다.
제가 최근에 자주 찾게 된 막걸리들도 이런 기준으로 고른 것들입니다. 탄산이 없거나 거의 없는 제품들인데, 속이 훨씬 편하고 다음 날 컨디션도 확실히 다릅니다. 막걸리를 고를 때 참고할 만한 기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병 뒷면 식품 유형이 '탁주'라고만 표기되어 있으면 생막걸리, '살균탁주'라고 표기되어 있으면 살균 막걸리입니다.
- '100일 발효', '장기 숙성' 등의 문구가 있는 제품은 아세트알데히드 함량이 상대적으로 낮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탄산이 없거나 미약한 막걸리는 발효가 완전히 끝난 제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1회 섭취 권장량은 200~400mL 미만, 즉 한 잔에서 두 잔 정도가 적당합니다.
막걸리 속 에탄올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국립암센터에서도 음주량과 암 발생 위험의 상관관계를 꾸준히 안내하고 있습니다(출처: 국립암센터). 아무리 유익한 성분이 많아도 과음이 해롭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결국 막걸리는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꽤 다른 음료가 됩니다. 저처럼 한때 트라우마가 있었던 분이라면, 미숙주 상태의 탄산 막걸리를 한꺼번에 많이 마셨던 것이 문제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발효가 충분히 이루어진 제품을 한두 잔 적당히, 잘 흔들어서 마시는 것. 이것만 지켜도 막걸리는 생각보다 훨씬 몸에 부드러운 술이 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공개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 또는 영양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상의 문제가 있으신 분은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