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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2024)는 전편처럼 서도철(황정민)이 악인을 붙잡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구를 악인이라고 부를 것인지부터 복잡하다. 한 교수가 살해되고 과거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연달아 죽자, 인터넷에서는 정체불명의 응징자 '해치'를 영웅처럼 떠받든다. 법의 처벌이 부족했다고 느낀 사람들이 그의 폭력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형사인 서도철은 그를 막아야 하지만, 관객 역시 피해자들이 겪은 일을 생각하면 쉽게 환호를 거두지 못한다. 이 영화의 불편한 출발점은 악인을 벌한다는 목표가 같아 보일 때조차, 범인을 체포하는 일과 사람을 죽이는 일은 결코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서도철의 강력범죄수사대에는 유능한 신참 박선우(정해인)가 합류한다. 온라인에서 격투 실력으로 유명해진 그는 선배를 존경한다고 말하고 위험한 현장에도 망설임 없이 뛰어든다. 그러나 해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가 가진 정의감은 점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전편이 재벌 3세 조태오의 명백한 갑질을 응징했다면, 속편은 우리가 응징 자체를 즐기는 순간 무엇을 놓치게 되는지 묻는다.

    ※ 해치의 정체와 마지막 대결, 엔딩 크레딧 이후 장면까지 다루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베테랑2

    1. 해치의 표적 예고 : 범죄의 순서는 누가 정하는가?

    해치는 이미 범죄를 저질렀거나 법의 처벌을 피해 갔다고 알려진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는다. 다음 희생자를 예고하는 영상이 공개될 때마다 시민들은 수사 결과보다 응징의 순간을 기다린다. 영상은 증거를 검토하는 재판의 자리가 아니다. 누군가를 범죄자로 규정하고, 그가 죽어도 괜찮다는 분위기를 빠르게 퍼뜨리는 무대다. 범죄자가 처벌받기를 바라는 정당한 마음이 어느새 살인을 구경하려는 흥분과 섞인다.

    이 과정에서 해치를 다루는 인터넷 방송인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소문을 이야기로 포장하고, 추측을 확신처럼 전달하며, 시청자의 분노를 계속 붙잡아 둔다. 조회수가 늘어날수록 분노는 확인해야 할 정보가 아니라 생산해야 할 콘텐츠가 된다. 누가 피해자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보다 누가 더 자극적인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사건의 의미를 먼저 결정하는 세계가 펼쳐진다.

    해치가 다음 표적으로 지목한 전석우를 경찰이 보호해야 하는 상황은 이 모순을 극단으로 끌고 간다. 경찰이 미운 사람을 지키는 데 시간을 쓰는 이유는 그를 용서해서가 아니다.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죽일 권리까지 얻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원칙을 불편하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 영화의 첫 번째 성취다.

    2. 박선우의 조르기 : 좋은 형사의 기술이 살인의 기술이 될 때

    박선우는 몸을 잘 쓴다. 범인을 제압하는 장면에서 다리를 이용한 조르기 기술은 보는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온라인에서는 그를 강한 경찰로 기억한다. 서도철 역시 현장에서 그의 반사신경과 대담함을 눈여겨본다. 하지만 같은 기술은 상대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수단이면서, 한계를 넘으면 생명을 빼앗는 수단이기도 하다. 영화는 힘을 얼마나 정교하게 사용하는가보다 언제 멈출 줄 아는가를 문제 삼는다.

    정해인은 친절한 표정과 과격한 행동 사이의 차이를 이용한다. 처음에는 예의 바른 후배처럼 보이던 박선우가 누군가를 제압할 때면 상대의 고통에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뒤늦게 그가 해치의 정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앞서 감탄했던 액션 장면도 달리 보인다. 관객은 폭력의 솜씨를 능력으로 받아들였던 자신의 반응까지 돌아보게 된다.

    박선우는 범죄자를 향한 분노를 정의라고 믿지만, 그 확신을 제어할 절차를 인정하지 않는다. 스스로 판사와 집행자가 되면 타인의 반론을 들을 이유도 사라진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범인을 쓰러뜨릴 힘이 아니라, 상대가 쓰러진 뒤 자신의 손을 거둘 이유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그의 위험은 특별한 무기보다 자신을 절대로 틀리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3. 남산의 추격 : 폭력을 공개하면 진실도 공개되는가?

    인터넷 방송과 연결된 남산의 추격 장면에서는 누가 진짜 해치인지조차 불확실한 상태에서 사람들의 시선과 경찰의 행동이 뒤섞인다. 화면 속에서는 누군가가 범인으로 지목되면 곧장 극적인 제압 장면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박선우가 거칠게 공격한 인물이 실제 해치가 아니라 방송을 위해 동원된 인물이라는 사실은 그런 기대를 무너뜨린다. 목격자도, 시청자도, 현장에 있던 경찰도 틀릴 수 있다.

    이 장면은 화면에 찍혔다는 이유만으로 사실을 다 본 것처럼 생각하는 습관을 건드린다. 영상에는 주먹이 보이지만 그 주먹을 휘두를 정당한 이유까지 들어 있지는 않다. 누군가가 넘어지는 모습은 전해져도 그 사람이 정말 범죄자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잘려 나갈 수 있다. 공개된 폭력이 자동으로 공정한 폭력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카메라가 있을수록 과감한 행동이 칭찬받고, 신중한 판단은 답답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류승완 감독은 추격 중 넘어지고 부딪히는 몸을 강조해 액션의 통증을 전한다. 화려하게 제압하는 동작만 남기지 않고 계단과 바닥에 몸이 부딪히는 순간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관객은 웃다가도 누군가가 다쳤다는 감각으로 돌아온다. 전편의 시원한 주먹이 속편에서는 조금 불편한 질문으로 바뀌는 지점이다.

    4. 서도철의 아들 : 사회의 정의를 말하는 아버지가 놓친 것

    서도철은 범죄자를 쫓느라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적다. 그런 사이 아들 우진은 학교에서 따돌림과 폭력을 겪는다. 서도철은 거리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불의를 알아보는 형사지만, 아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충분히 듣지 못한다. 사건의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직업적 신념과 가까운 가족의 말을 듣는 생활의 책임이 어긋난다. 이것은 정의로운 형사에게도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음을 보여준다.

    박선우가 서도철을 존경한다며 가까이 다가오는 관계는 이 가족 서사와 묘하게 겹친다. 서도철은 자신의 방식을 따르는 유능한 후배를 보며 자부심을 느끼지만, 정작 아들에게는 다가가는 방법을 잘 모른다. 직장에서 인정받는 어른의 모습이 가정에서도 곧바로 좋은 어른의 자격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폭력의 가해자를 처벌하는 일만큼 상처 입은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듣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이 두 관계를 나란히 보며 드러난다.

    후반부 우진까지 위험에 휘말리자 서도철이 지키려는 대상은 추상적인 시민이 아니라 자신이 충분히 돌보지 못한 아들이 된다. 영화의 가족 이야기는 다소 익숙한 인질극의 공식으로 흘러가지만, 마지막에 서도철이 아들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태도는 의미가 있다. 정의를 말하는 어른의 성숙함은 상대를 제압하는 힘뿐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설명하고 사과할 수 있는 능력에서도 드러난다.

    5. 빗속의 옥상 : 힘을 가진 사람이 어디까지 버텨야 하는가?

    영화의 옥상 격투는 비에 젖은 바닥과 난간, 미끄러지는 발을 이용해 불안한 움직임을 만든다. 몸이 단단하게 고정된 영웅들의 결투라기보다 한 번 잘못 넘어지면 죽을 수도 있는 싸움에 가깝다. 박선우의 격투 기술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를 상대하는 사람의 숨이 얼마나 빨리 막힐 수 있는지가 화면에 드러난다.

    이 액션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의 우열만이 아니다. 형사가 범인을 제압할 때 필요한 힘과, 쓰러진 범인에게 계속 행사해서는 안 되는 힘 사이에 선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선이 흐려질수록 서도철과 박선우는 비슷해 보인다. 두 사람 모두 주먹을 쓰고 위험을 감수하지만 그 힘의 끝을 어디에 두느냐는 전혀 다르다. 박선우에게 제압은 자신이 옳다는 증명의 순간이고, 서도철에게 제압은 체포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다만 영화는 힘의 윤리를 복잡하게 질문하면서도 상당한 분량의 폭력적인 액션을 관객의 볼거리로 제공한다. 비판하려는 폭력에서 동시에 쾌감을 끌어낸다는 긴장이 남는 것이다. 이 모순은 쉽게 해결되지 않지만, 작품이 관객의 환호를 불편하게 되돌려 놓으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6. 서도철의 심폐소생술 : 죽여야 할 악인을 살리는 마지막 선택

    마지막 대결에서 박선우는 끝내 제압당한다. 이제 서도철이 마음만 먹으면 분노에 휩쓸려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박선우를 살리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한다. 앞서 범죄자를 죽여 사회의 분노를 만족시키던 해치와 정반대의 선택이다. 서도철이 지키는 정의는 선한 사람만 살릴 가치가 있다는 기준이 아니라,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생명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기준이다.

    이 결말은 관객에게 화끈한 복수의 만족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잔인한 범죄자를 왜 살려야 하는지 묻게 만든다. 그러나 형사의 직업윤리는 바로 그런 질문 앞에서 시험된다.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조차 법의 절차로 데려와 책임을 묻는 것, 그것이 사적 응징과 공적 수사의 결정적인 차이다. 심폐소생술은 주먹보다 조용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분명한 반격이 된다.

    엔딩 크레딧 뒤 박선우가 호송 중 탈출하는 장면은 사건을 완전히 마무리하지 않는다. 그가 다시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서도철의 선택을 더 불편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미래의 범죄 가능성을 이유로 그때 죽였어야 한다고 결론 내리면 해치의 논리로 되돌아간다. 《베테랑2》는 범인을 확실히 없애는 이야기보다, 범인을 없애고 싶다는 충동을 어떻게 멈출 것인가에 관한 영화다. 전편이 통쾌한 체포로 악인의 권력을 무너뜨렸다면 속편은 체포한 뒤에도 지켜야 할 원칙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정의가 끝나는 지점은 상대를 쓰러뜨리는 순간이 아니라, 쓰러진 상대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순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