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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업 면접에서 인정받지 못한 능력이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까. 이상근 감독의 《엑시트》(2019)는 대학 산악 동아리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였지만 졸업 후 취업에 번번이 실패한 용남(조정석)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어머니의 칠순 잔치에 모인 가족들은 용남을 걱정하면서도 그의 미래를 답답해한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유독가스가 도시를 뒤덮자 가족들이 쓸모없다고 여기던 철봉 운동과 암벽등반 경험은 결정적인 탈출 기술이 된다. 이 영화의 반전은 백수가 갑자기 특별한 영웅이 되는 데 있지 않다. 원래 있던 능력을 사회가 이제야 알아보게 된다는 데 있다.

    용남은 잔치 장소인 구름정원에서 대학 동아리 후배 의주(임윤아)를 만난다. 의주는 그곳의 직원으로 일하지만 직장에서는 마땅한 존중을 받지 못한다. 유독가스가 밀려오고 옥상 출입문마저 잠기자 두 사람은 자신들이 익힌 기술로 길을 만들어야 한다. 《엑시트》는 거대한 재난을 멀리서 설명하는 대신 작은 선택이 이어지는 탈출 과정에 시선을 붙들어 둔다.

    ※ 주요 구조 장면과 마지막 결말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엑시트

    1. 용남의 철봉 : 쓸모없던 재능은 누가 평가하는가?

    영화 초반 용남은 놀이터 철봉에 매달려 운동한다. 능숙하게 몸을 움직이지만 가족과 이웃이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한가한 백수에 가깝다. 대학 시절 산악 동아리에서 쌓은 기술은 이력서의 빈자리를 채워 주지 못한다. 남들보다 오래 버티는 팔과 몸의 균형을 아는 감각은 평가할 채용 공고가 없으면 마치 없는 능력처럼 취급된다.

    재난이 시작된 뒤 상황은 뒤집힌다. 옥상문이 잠겨 모두가 갇히자 용남은 건물 외벽을 타고 위로 올라간다. 연회장 안에서는 민망한 존재였던 남자가 바깥에서는 다른 사람의 탈출로를 여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가족의 시선이 바뀌었다고 해서 취업난이라는 현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재능이 인정받는 순간을 통쾌하게 보여주지만, 목숨을 걸 만큼 극단적인 상황이 와야만 청년의 능력을 알아본다는 설정 자체가 사회에 대한 쓴 농담이기도 하다.

    조정석은 허둥대는 말투와 능숙한 몸놀림을 한 인물 안에 겹친다. 코미디에서는 불안하고 초라해 보이던 사람이 벽에 매달린 순간 믿음직해진다. 그 차이는 용남의 인격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관객이 그의 몸을 읽는 기준을 바꾸었기 때문에 생긴다.

    2. 의주의 판단 : 함께 달리는 사람은 왜 조연이 아닌가?

    의주는 대학 시절 용남과 같은 산악 동아리에서 활동한 사람이다. 잔치장에서 그는 직원으로서 손님을 응대하고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한다. 특히 구 점장(강기영)의 불편한 관심과 무책임한 태도는 일터 안에서 의주에게 허락된 권한이 얼마나 적은지 보여준다. 그러나 재난 속에서 의주는 누군가가 보호해 주기만 기다리지 않는다. 상황을 살피고 이동 방향을 정하며 용남과 역할을 나눈다.

    이 점은 영화의 로맨스를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두 사람이 친밀해지는 이유는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구해 주어서가 아니다. 서로의 체력과 경험을 믿고 위기 때마다 판단을 교환하기 때문이다. 높은 곳을 오를 때 누가 먼저 손을 내밀고 누가 뒤에서 몸을 받칠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함께 살아남는다는 말은 늘 같은 사람이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앞자리를 바꿔 가며 위험을 나누는 일로 표현된다.

    임윤아의 연기는 의주가 두려워하면서도 실무적인 결정을 이어 가는 모습을 살린다. 다만 일터에서 겪던 부당한 대우는 재난이 본격화된 뒤 배경으로 밀려난다. 재난에서 탈출해도 의주가 돌아가야 할 노동환경이 자동으로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질문은 남는다.

    3. 잠긴 옥상문 : 안전한 길이 왜 가장 먼저 막혀 있는가?

    가스가 낮은 곳부터 밀려오자 사람들은 높은 옥상으로 향한다. 그런데 출입문은 잠겨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첫 번째 커다란 장애물은 괴물이나 폭발이 아니라 일상적인 문 하나다. 재난이 벌어지기 전에는 아무도 그 문이 열리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고, 위기에서는 그 작은 방치가 여러 사람의 목숨을 좌우한다.

    용남이 외벽을 타고 옥상에 접근하는 장면은 손끝이 미끄러질까 봐 숨을 멈추게 한다. 카메라는 건물 전체를 멋있게 내려다보는 대신 벽을 붙잡는 팔과 발이 닿을 자리를 보여준다. 관객은 사람이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지뿐 아니라 다음에 붙잡을 곳이 있는지를 먼저 찾게 된다. 화려한 초인 액션이 아니라 평범한 도시 건물의 돌출부와 난간이 긴장의 재료가 된다.

    그렇지만 용남의 성공을 현실적인 재난 대피법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무장비로 고층 건물 외벽을 오르는 일은 치명적으로 위험하며, 독성가스의 움직임도 실제 물질과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 작품 속 옥상 탈출은 극적 설정이지 누구나 따라 해야 할 행동이 아니다. 진짜로 주목해야 할 문제는 위험한 등반을 해낸 용기보다, 왜 구조 통로가 미리 확보되지 않았는가에 있다.

    4. 학원 아이들의 구조 : 구조받을 차례를 스스로 미루는 이유

    용남과 의주는 구조 헬기에 오를 기회를 얻지만, 건너편 건물의 보습학원에 갇힌 아이들을 발견한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위치를 알리는 대신 아이들이 먼저 발견되도록 한다. 유독가스가 올라오는 상황에서 구조 기회를 포기하는 일은 분명 위험한 결정이다. 영화는 그 선택을 통쾌하게만 다루지 않고 다시 뛰어야 하는 두 사람의 공포도 이어서 보여준다.

    이 장면은 용남이 가족을 구조한 뒤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다. 처음 그의 목표는 어머니와 가족을 안전하게 보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과 무관한 아이들의 안전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능력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사람들 앞에서 칭찬받는 일만이 아니라, 그 능력을 언제 누구에게 쓸지 선택하는 책임과도 연결된다.

    동시에 관객은 왜 생존자가 다른 생존자를 위해 구조 순서를 조정해야 했는지 묻게 된다. 아이들을 살리는 선택이 아름답다고 해서 부족한 구조 자원과 정보 전달의 문제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선의가 공공 구조 체계를 대신하는 순간은 감동적이면서도 씁쓸하다.

    5. 드론의 시선 : 보이지 않던 청년이 모두에게 보일 때

    건물 사이를 달리는 용남과 의주의 모습은 드론 카메라에 포착되고, 화면은 뉴스와 사람들의 휴대전화로 이어진다. 위험 속에서 작아지던 두 사람이 멀리 있는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이다. 구조를 기다리는 생존자에게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리는 일은 살아남기 위한 또 하나의 기술이 된다. 앞서 용남의 능력은 가족의 눈앞에서도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제 낯선 사람들이 그의 움직임을 숨죽여 지켜본다.

    드론은 흥미로운 양면성을 갖는다. 하늘에서 촬영한 화면은 두 사람의 위치를 알려 도움을 모으지만, 동시에 생사의 위기를 사람들이 구경하는 장면으로 만든다. 영화는 여러 드론이 모이는 장면을 통해 낯선 이들의 참여를 따뜻하게 그린다. 그래도 화면 속 누군가가 위험에 빠졌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박수와 조회수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할 수 있다. 보는 일과 돕는 일은 같지 않지만, 그 시선이 실제 구조로 이어질 때 관람은 연대에 가까워진다.

    마지막에 드론과 구조 헬기가 두 사람을 찾는 과정은 현대적인 도시의 통신 기술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쪽으로 쓰일 수 있다는 희망을 남긴다. 다만 실제 구조 현장에서는 드론 운용이 구조 항공기의 접근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화면 속 장면을 그대로 행동 지침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6. 탈출의 의미 : 가스가 걷힌 뒤에도 남아 있는 벽

    《엑시트》의 즐거움은 위기를 한 번 넘을 때마다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는 리듬에 있다. 가까스로 옥상에 오르면 더 높은 건물이 필요하고, 건물을 건너면 또 다른 장애물이 기다린다. 화면 아래에서 밀려오는 가스는 시간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장치다. 두 사람은 오래 고민할 수 없기에 서로를 믿고 다음 발판을 찾아야 한다. 이 직선적인 구성은 재난의 원인이나 가해자의 사정보다 탈출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한다.

    그만큼 한계도 뚜렷하다. 유독가스의 물리적 특성과 도시 전체의 대응은 액션을 위해 단순화되고, 구조의 우연도 반복된다. 그러나 영화는 재난의 규모를 과시하는 대신 손을 잡고 한 걸음 더 옮기는 사람들의 표정으로 긴장을 만든다. 용남과 의주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구하는 특별한 자격증이 아니라, 이미 갖고 있던 기술을 서로를 위해 사용하는 판단이다.

    마지막에 살아 돌아온 용남이 갑자기 안정된 일자리를 얻는 것은 아니다. 의주가 겪었던 직장의 문제 역시 한 번의 탈출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제목의 '엑시트'는 가스가 가득한 도시에서 빠져나가는 문이면서, 개인의 가치가 취업 여부나 직함으로만 결정되는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처럼 읽힌다. 살아남는 데 필요했던 재능이 평소에도 존중받았다면, 용남은 굳이 목숨을 걸어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영화가 남기는 웃음 뒤에는 바로 그 불편한 질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