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설명하는 것조차 불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난하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고, 가족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시선을 받는 것도 싫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말을 줄이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이 가까이 오기 전에 먼저 화를 냅니다.
2011년 개봉한 이한 감독의 영화 완득이는 바로 그런 청소년의 이야기입니다.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유아인이 주인공 도완득을, 김윤석이 담임교사 이동주를 연기했습니다. 박수영은 완득이의 아버지, 이자스민은 완득이의 어머니를 맡았습니다.
완득이는 학교에서 눈에 잘 띄지 않으려는 학생입니다. 공부에 큰 관심이 없고, 누군가 자신에게 간섭하는 것도 싫어합니다. 특히 담임교사 동주는 완득이가 가장 피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동주는 수업 시간에도 완득이를 지목하고, 집안 사정에 거리낌 없이 끼어들며, 때로는 교사답지 않은 거친 말투로 그를 자극합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씩 달라집니다. 완득이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동주를 통해 오히려 외면해 왔던 가족과 자신의 삶을 마주하게 됩니다. 동시에 킥복싱을 배우면서 마음속에 쌓여 있던 분노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완득이가 갑자기 뛰어난 학생이 되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의 경제적 상황은 쉽게 달라지지 않고, 가족이 가진 어려움도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대신 완득이는 자신이 부끄럽게 생각했던 것들을 조금씩 다르게 바라보게 됩니다.
완득이의 성장은 남들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갖추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무조건 숨겨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게 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동주의 불편한 교육법, 킥복싱의 성장 서사, 다문화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세 가지 관점을 중심으로 영화를 분석하겠습니다. 여기에 완득이와 아버지의 관계, 웃음 속에 담긴 사회적 현실, 김윤석과 유아인의 연기가 만들어 내는 감정까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영화의 주요 인물 관계와 후반부 전개를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동주의 불편한 교육법 : 좋은 선생님은 반드시 다정해야 할까?
완득이에서 가장 독특한 인물은 김윤석이 연기한 담임교사 이동주입니다. 동주는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모범적인 교사의 모습과 상당히 다릅니다. 학생에게 거친 말을 사용하고, 수업 시간에 완득이를 자주 지목하며, 그의 사생활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합니다.
완득이는 이런 동주를 몹시 싫어합니다. 교회에 가서 동주를 향한 불만을 쏟아낼 정도로 그를 귀찮고 성가신 존재로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다정한 사제지간보다 끊임없이 말다툼하는 이웃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동주의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완득이에게 관심을 갖는 방식이 다른 어른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완득이 주변의 많은 사람은 그의 가정환경을 특별한 사정으로 바라보거나 아예 깊이 관여하지 않습니다. 반면 동주는 완득이의 삶에 계속 끼어듭니다. 때로는 무례할 만큼 직접적이지만, 완득이가 자신의 문제를 외면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특히 동주가 완득이와 어머니의 만남에 관여하는 과정은 영화의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완득이는 어머니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데 복잡한 감정을 느끼지만, 동주는 그가 가족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도록 움직입니다.
여기서 동주의 교육 방식이 가진 특징이 드러납니다. 그는 학생을 교실 안의 성적이나 생활 태도로만 판단하지 않습니다. 완득이가 학교 밖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까지 관심을 갖습니다.
동주에게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일에만 머물지 않고, 학생이 자신의 삶을 회피하지 않도록 곁에서 개입하는 행동으로 확장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을 무조건 이상적인 교육법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동주의 거친 말투와 사생활에 대한 개입은 현실에서 학생에게 상처를 주거나 경계를 침해할 수 있습니다.
학생에게 관심을 갖는 일과 학생의 동의 없이 모든 문제에 끼어드는 일은 구분해야 합니다. 좋은 의도가 있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는 동주의 무례함을 코미디로 활용하면서 그의 진심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관객에게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현실적인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생각하면 비판적인 시선도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동주라는 캐릭터가 인상적인 이유는 완득이를 불쌍한 학생으로만 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완득이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일방적인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완득이 역시 동주에게 무조건 순종하지 않습니다. 불평하고 반항하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편한 존재가 아니지만, 바로 그 불편한 관계 속에서 조금씩 변화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완득이는 훌륭한 선생님이 문제아를 교화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결핍을 가진 두 사람이 충돌하면서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킥복싱의 성장 서사 : 완득이는 왜 주먹을 쓰면서 달라질까?
완득이는 영화 초반부터 분노를 쉽게 드러내는 인물입니다. 누군가 자신의 가족을 무시하거나 불편한 말을 하면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거칠게 반응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단순히 성격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완득이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한 시선과 편견을 반복해서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나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을 충분히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주먹은 가장 즉각적인 대응 수단이 됩니다.
영화에서 완득이가 킥복싱을 배우기 시작하는 과정은 이러한 감정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몸을 움직이고 싸우는 기술을 익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운동은 완득이가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이 됩니다.
킥복싱은 상대를 무조건 세게 때리는 운동이 아닙니다. 자세를 익히고, 거리를 조절하고, 상대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자신의 힘을 통제해야 합니다.
이러한 훈련은 완득이의 기존 행동 방식과 대비됩니다. 이전에는 화가 나면 즉시 반응했지만, 운동을 배우면서 그는 힘을 사용하기 전에 생각하고 조절해야 하는 상황을 경험합니다.
완득이에게 킥복싱은 주먹을 더 강하게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를 다룰 수 있는 언어를 배우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영화는 운동을 단순한 성공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완득이가 반드시 유명한 선수가 되어야만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스스로 선택한 활동에 몰입하고,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자신의 변화를 느낀다는 사실입니다.
완득이는 이전까지 주변의 시선에 반응하며 살아온 인물입니다. 가정환경을 숨기고, 동주의 간섭에 화를 내고,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그러나 킥복싱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보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방식으로 노력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물론 운동을 시작한다고 해서 가난이나 가족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 역시 그러한 변화를 지나치게 극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완득이가 자신의 몸과 감정을 조금씩 통제하면서 이전보다 능동적으로 삶에 참여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성장 방식은 현실적인 설득력을 가집니다. 사람의 삶은 하나의 사건으로 완전히 바뀌기보다 작은 경험과 반복적인 선택을 통해 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문화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 : 완득이는 왜 어머니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까?
완득이의 가족은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의 아버지는 작은 키 때문에 사회적 편견을 경험하는 인물이며, 어머니는 필리핀 출신의 결혼이주여성입니다.
완득이는 오랫동안 어머니와 떨어져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단순한 반가움만을 느끼지 않습니다. 낯설고 불편한 감정이 먼저 나타납니다.
이러한 반응은 완득이가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기억이 충분하지 않고, 자신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특히 완득이가 성장한 환경에는 가족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회적 시선이 존재합니다. 아버지의 외모와 직업, 어머니의 출신 배경은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평가의 대상이 됩니다.
완득이는 이러한 시선을 피하기 위해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숨기거나 거리를 두려 합니다. 자신의 가족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마음과 가족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입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중요한 변화는 완득이가 어머니를 만난 뒤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어머니는 단순히 완득이의 출생과 관련된 정보가 아닙니다. 그 역시 자신의 삶과 감정을 가진 한 사람입니다. 완득이는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던 가족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아야 합니다.
완득이의 성장은 어머니가 필리핀 출신이라는 사실을 극복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사실을 부끄러움이나 거리감의 이유로 삼지 않게 되는 과정입니다.
이 차이는 중요합니다. 가족의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는 사실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차이를 이유로 사람을 구분하거나 평가하는 사회적 태도에 있습니다.
영화는 완득이와 어머니의 관계를 통해 한국 사회의 다문화 가족이 경험할 수 있는 편견을 보여줍니다. 특히 가족의 모습이 사회에서 기대하는 전형적인 형태와 다를 때 당사자들이 어떤 감정을 겪는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작품의 한계도 있습니다. 어머니의 삶과 내면은 주로 완득이의 성장에 필요한 요소로 제시됩니다. 어머니가 한국에서 어떤 경험을 했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충분한 설명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는 다문화 가족을 다루는 영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이주민 인물이 독립적인 주체라기보다 한국인 주인공의 변화를 이끄는 역할에 머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완득이가 어머니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공감하면서도, 어머니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충분히 표현되었는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비판적인 시선은 영화의 가치를 낮추기보다 작품이 제기한 문제를 더 넓게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완득이와 아버지의 관계 : 보호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완득이의 아버지는 작은 키 때문에 사회적인 편견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는 공연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 가고, 아들 완득이를 돌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완득이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누군가 아버지를 무시하거나 놀리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러한 모습에는 아버지를 향한 애정과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불편함이 함께 존재합니다.
완득이는 아버지를 보호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의 모습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사랑과 부끄러움이 뒤섞인 감정입니다.
영화는 이러한 모순을 완득이의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문제로 다룹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아버지가 단순히 아들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약한 인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일하고 살아가며, 완득이를 위해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완득이가 아버지를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걱정이 아버지를 무능하거나 불쌍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가족의 의미는 누가 더 강하고 약한가에 따라 결정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에서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점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완득이에게 중요한 배움의 대상입니다. 완득이는 자신이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아버지가 오랫동안 자신을 위해 노력해 왔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됩니다.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대신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아닙니다. 상대가 가진 삶의 방식과 선택을 존중하는 일도 포함됩니다.
완득이가 성장하면서 달라지는 부분은 바로 이러한 시선입니다. 그는 가족을 남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독립적인 사람들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영화는 아버지가 겪는 사회적 차별의 구조를 깊이 분석하지는 않습니다. 편견이 발생하는 사회적 원인보다 가족의 정서적인 관계에 집중합니다.
그럼에도 아버지와 완득이의 관계는 영화가 말하는 성장의 의미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성장은 누군가를 대신해 강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김윤석과 유아인의 연기 : 거친 대화가 어떻게 따뜻한 관계를 만들까?
완득이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김윤석과 유아인의 연기 호흡입니다. 두 배우는 서로에게 다정한 말을 자주 건네지 않지만, 대화의 속도와 표정, 반응을 통해 관계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김윤석이 연기한 동주는 말투가 거칠고 행동이 직설적입니다.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라기보다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는 까다로운 어른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반면 유아인이 연기한 완득이는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 합니다.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면 불편해하고, 특히 동주가 말을 걸 때는 짜증과 경계심을 숨기지 않습니다.
이 두 인물의 성격이 충돌하면서 영화의 코미디가 만들어집니다. 동주가 완득이를 자극하면 완득이는 불평하거나 반항하고, 동주는 다시 태연하게 받아칩니다.
이러한 장면은 단순히 재미있는 대화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얼마나 익숙해져 가는지 보여주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동주의 간섭이 완득이에게 불쾌한 경험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 사이에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신뢰가 생깁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영화가 이 관계를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은 어느 순간 갑자기 서로에게 고마움을 고백하거나 완벽하게 화해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말다툼하고 서로를 놀리지만, 그 안에서 이전과 다른 감정이 느껴집니다.
완득이의 따뜻함은 다정한 대사를 많이 사용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친 말투 속에서도 상대를 외면하지 않는 행동이 반복되면서 만들어집니다.
김윤석은 동주의 무례함과 인간적인 관심을 동시에 표현하며 인물이 단순한 괴짜 교사로만 보이지 않도록 만듭니다. 유아인은 완득이의 반항적인 태도 뒤에 있는 불안과 외로움을 자연스럽게 드러냅니다.
이러한 연기 덕분에 두 인물의 관계는 전형적인 스승과 제자의 감동적인 이야기보다 현실적인 사람들 사이의 관계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실제 교육 현장에서 동주의 언행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영화 속 관계가 설득력을 갖는 것은 두 배우의 연기와 극적인 상황이 결합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이 관계를 감상할 때는 동주의 진심과 그의 행동 방식이 가진 문제를 구분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웃음 속의 사회적 현실 : 완득이는 가난을 어떻게 보여주는가?
완득이는 가난과 차별, 이주민 가족과 청소년의 성장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비교적 밝습니다.
동주와 완득이의 말다툼, 동네 사람들의 소소한 행동,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웃음은 관객이 이야기에 부담 없이 접근하도록 만듭니다.
이러한 방식은 영화의 중요한 장점입니다.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이 반드시 어둡고 비극적일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완득이는 자신의 환경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만 항상 슬퍼하거나 절망하는 인물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는 화를 내고 장난을 치며, 운동을 배우고 친구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삶 역시 다양한 감정과 경험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밝은 분위기에는 한계도 존재합니다. 영화는 가난과 차별을 개인의 관계와 따뜻한 관심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문제처럼 표현합니다.
동주와 주변 사람들이 완득이를 돕는 과정은 감동적이지만, 이러한 도움만으로 사회적 불평등의 구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완득이의 가족이 경험하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편견은 개인의 태도만 바꾼다고 완전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거, 차별 없는 교육 환경과 사회적 지원 역시 중요합니다.
영화는 이러한 제도적 문제보다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집중합니다. 이는 작품의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사회문제의 복잡성을 상대적으로 단순화하는 결과를 만들기도 합니다.
또한 동주의 도움을 통해 완득이가 변화하는 구조는 좋은 어른 한 사람이 청소년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전달하지만, 그 변화에 필요한 사회적 조건을 충분히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완득이의 유머는 의미가 있습니다. 영화는 가난한 사람을 동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들도 웃고 화내고 실수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완득이의 웃음은 사회문제를 지우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편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이 두 가지 효과를 함께 생각할 때 영화의 장점과 한계를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완득이가 남긴 질문 : 성장한다는 것은 남들과 같아지는 일일까?
영화 완득이는 한 청소년이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조금씩 변화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전형적인 성공담과 다릅니다.
완득이는 갑자기 공부를 잘하게 되거나 부자가 되지 않습니다. 가족의 경제적인 어려움도 한순간에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회가 가족을 바라보는 편견 역시 영화가 끝났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완득이는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기 시작합니다.
그는 동주와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누군가의 관심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웁니다. 킥복싱을 통해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고, 스스로 선택한 일에 몰입하는 경험을 합니다.
어머니와의 만남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아버지의 삶을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눈에 띄는 성공보다 작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던 사람이 그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닙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성장은 남들과 같아지는 과정이 아닙니다. 완득이가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가정환경을 갖추거나 사회가 기대하는 모범적인 학생으로 변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무조건 숨겨야 할 이유로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완득이는 차이를 극복해야 할 결함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질문을 던집니다.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는 사실, 아버지가 작은 키를 가졌다는 사실, 어머니가 필리핀 출신이라는 사실은 완득이라는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완득이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자신의 삶을 불편하게 느낍니다. 영화는 그가 이러한 시선을 조금씩 벗어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물론 영화의 따뜻한 결말이 모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완득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는 여전히 경제적 불평등과 차별이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남기는 희망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확신이 아닙니다. 문제를 마주할 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동주는 완득이에게 완벽한 어른이 아니지만 그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어려움 속에서도 아들을 돌보려 하고, 어머니는 완득이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완득이는 이러한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조금씩 이해합니다.
완득이의 진정한 성장은 남들보다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숨기지 않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용기를 얻는 데 있습니다.
이한 감독의 완득이는 웃음과 따뜻함으로 관객에게 다가오지만, 그 안에는 교육의 의미와 가족의 다양성, 사회적 편견에 관한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오래 남는 것은 완득이가 얼마나 훌륭한 선수가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보다 그가 앞으로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이 가진 조건을 먼저 보고 있지는 않을까요? 가정환경이나 외모, 출신 배경을 기준으로 그 사람의 가능성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완득이는 이러한 질문에 거창한 대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서로 다른 사람들이 부딪히고 웃고 화해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성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성장한다는 것은 남들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변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받아들이고 타인에게도 같은 존중을 건넬 수 있게 되는 일인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