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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깊이 보기 : 최환의 부검 명령, 한병용의 쪽지, 연희의 마지막 걸음

장준환 감독의 《1987》(2017)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을 해결하는 단 한 명의 주인공이 없다. 검사는 시신을 지키고, 기자는 질문을 멈추지 않으며, 교도관은 작은 쪽지를 밖으로 내보낸다. 누군가는 그 종이를 전달하고, 또 누군가는 거리로 나간다. 각자가 아는 진실은 불완전하지만 그 조각이 다른 사람에게 도착하면서 감추어진 죽음의 전모가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민주주의는 거대한 영웅 한 사람이 선물한 결과가 아니라, 자기 앞에 놓인 작은 선택을 다른 사람에게 이어 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사건이다.1987년 1월, 경찰 조사를 받던 대학생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한다. 경찰은 사건을 급히 덮으려 하고 대공수사 책임자 박처원(김윤석)은 조직을 지키기 위해 사실을 조정한다. 하지만 최환 검사(하정우), 윤..

카테고리 없음 2026. 10. 30. 00:29
써니 깊이 보기 : 춘화의 마지막 부탁, 수지의 흉터, 장례식의 춤

오래된 친구를 만나면 우리는 흔히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강형철 감독의 《써니》(2011)에서 다시 만난 여성들은 실제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누군가는 돈을 벌었지만 외롭고, 누군가는 꿈을 포기했으며, 누군가는 삶의 끝을 앞두고 있다. 유복한 주부로 살아가는 나미(유호정)는 병원에서 우연히 춘화(진희경)를 만난 뒤 잊고 지낸 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까닭은 그 시절이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른이 된 지금의 불완전한 삶을 다시 바라볼 용기를 추억에서 얻기 때문이다.1980년대 전라도 벌교에서 전학 온 어린 나미(심은경)는 사투리 때문에 놀림받다가 춘화(강소라)가 이끄는 친구들 사이에 들어간다. 장미와 진희, 금옥과 복희, 수지까지 일곱 명은 '써니'라는 이름으로 ..

카테고리 없음 2026. 10. 29. 23:23
밀정 깊이 보기 : 김장옥의 마지막 탄환, 열차의 밀정, 이정출의 마지막 폭탄

사람을 속이는 데 능숙한 인물이 가장 먼저 속이는 대상은 누구일까. 김지운 감독의 《밀정》(2016)은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 이정출(송강호)이 의열단을 추적하는 이야기로 출발한다. 그러나 이정출이 김우진(공유)과 가까워질수록 그가 숨기는 것은 수사 정보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내렸던 변절의 변명처럼 보인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일본 경찰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옛 동지가 죽고 새로운 동료가 고문당하는 동안 그 선택을 계속 지킬 수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밀정이란 정보를 훔치는 사람만이 아니라, 어느 편에 서 있는지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이다.1920년대 의열단은 상하이에서 폭탄을 들여와 일제의 주요 시설을 공격하려 한다. 이정출은 그 계획을 파악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

카테고리 없음 2026. 10. 29. 22:19
베테랑2 깊이 보기 : 해치의 표적 예고, 박선우의 조르기, 서도철의 심폐소생술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2024)는 전편처럼 서도철(황정민)이 악인을 붙잡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구를 악인이라고 부를 것인지부터 복잡하다. 한 교수가 살해되고 과거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연달아 죽자, 인터넷에서는 정체불명의 응징자 '해치'를 영웅처럼 떠받든다. 법의 처벌이 부족했다고 느낀 사람들이 그의 폭력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형사인 서도철은 그를 막아야 하지만, 관객 역시 피해자들이 겪은 일을 생각하면 쉽게 환호를 거두지 못한다. 이 영화의 불편한 출발점은 악인을 벌한다는 목표가 같아 보일 때조차, 범인을 체포하는 일과 사람을 죽이는 일은 결코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서도철의 강력범죄수사대에는 유능한 신참 박선우(정해인)가 합류한다. 온라인에서 격투 실력으로 유명해진 그는 ..

카테고리 없음 2026. 10. 28. 21:37
공조 깊이 보기 : 서로 다른 임무, 진태의 식탁, 동판의 마지막 선택

누군가와 협력한다는 말은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는 뜻일까. 김성훈 감독의 《공조》(2017)는 그 당연해 보이는 전제를 시작부터 무너뜨린다. 북한 형사 림철령(현빈)은 아내와 동료를 죽인 차기성(김주혁)을 쫓고, 남한 형사 강진태(유해진)는 철령을 도우라는 말과 동시에 그를 감시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서로 다른 임무를 감춘 두 사람이 같은 자동차에 앉아 서울을 누빈다. 이 영화의 진짜 수사는 범인을 찾는 일과 함께, 눈앞의 동료를 어디까지 믿어도 되는지 알아가는 과정이다.차기성 일당이 북한의 위조지폐 제작용 동판을 빼앗아 남한으로 달아나자 북한은 비공식 공조수사를 요청한다. 제한된 시간은 사흘이다. 철령에게는 복수와 임무가, 진태에게는 복직의 기회와 가족의 생계가 걸려 있다. 두 형사의 차이를 단순히 남..

카테고리 없음 2026. 10. 28. 20:31
관상 깊이 보기 : 수양대군의 얼굴, 진형의 눈, 파도와 바람

사람의 얼굴을 보고 미래를 알아낼 수 있다면 역사의 비극도 막을 수 있을까. 한재림 감독의 《관상》(2013)은 조선 최고의 관상가 내경(송강호)을 1453년 계유정난의 한가운데 세운다. 내경은 사람의 욕망과 위험을 얼굴에서 읽어내는 데 뛰어나지만, 수양대군이 일으키는 정변을 막는 데는 실패한다. 그가 무능해서가 아니다. 한 사람의 표정을 알아보는 일과 그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권력의 관계를 이해하는 일은 다르기 때문이다. 《관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은 미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위험이 다가오는 줄 알면서도 그것을 막을 힘이 없는 사람이다.몰락한 양반 출신 내경은 처남 팽헌(조정석), 아들 진형(이종석)과 산속에서 살다가 기방을 운영하는 연홍(김혜수)의 제안으로 한양에 들어온다. 관상 솜씨가..

카테고리 없음 2026. 10. 28.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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